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헨리크 라르손 (문단 편집) ===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 === [[파일:스웨덴 불가리아 라르손.jpg|width=100%]] 22살의 나이로 [[1994 FIFA 월드컵 미국|19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의 3위 입상에 공헌했으며[* [[3위 결정전]]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3번째 골을 터뜨렸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전에서 2골을 몰아쳐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이 죽음의 조([[나이지리아]], 잉글랜드, [[아르헨티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바티스투타]]의 눈물을 기억한다면 이 대회이다. 역사적으로 앙숙인 아르헨티나와 잉글랜드, 축구 라이벌 잉글랜드와 스웨덴, 아프리카 축구를 알린 나이지리아. 우승후보 1순위 아르헨티나는 고국의 경제 사정으로 선수들이 자비로 참가했으며 국민들에게 축구로 위로를 전하고자 했었다. 다만, 그 다음 대회에 바티스투타를 엔트리에서 제외했고 아르헨티나는 그때부터 살아나기 시작해서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에서는 유럽예선에서 [[스페인]]을 플레이오프로 밀어내고 본선 직행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6-0'''으로 대파하고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숫제 결승까지 올라갔다.]를 1위로 통과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16강에서 당시 돌풍의 팀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세네갈]]과 만나 탈락했다.[* 이 경기는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의 라르손과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세네갈]]의 디우프의 일기토 수준의 경기.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재미있는 경기였다. '''골대를 맞힌 [[세네갈 축구 국가대표팀|세네갈]]은 골대에 맞은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 골든골로 이겼고, 그 직전에 골대를 맞혔으나 공이 골문으로 들어가지 않은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은 패했다'''.] [[UEFA 유로 2004|유로 2004]]에서 4경기 3골을 기록하며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의 8강행에 앞장섰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에서도 조별리그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잉글랜드]]전에서 천금같은 동점 골을 넣으며 조국을 16강에 올려 놓았으나, 16강전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을 만나 2대0으로 패배 후 쓸쓸하게 퇴장했다.[* 독일 수비수 [[크리스토프 메첼더]]에게 밟혀서 페널티킥을 얻어냈으나 크로스바 위로 날리기까지 했다.] [[UEFA 유로 2008|유로 2008]]에서는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러시아]]에 패해 아쉽게 예선에서 탈락했고, 이후 [[프레드리크 융베리]]가 국가대표에서 은퇴하자 대표팀 주장에 선임되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2010 남아공 월드컵]] 지역 예선까지 치렀으나 [[덴마크]]와 [[포르투갈]]에게 밀려서 4번째 월드컵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예선 탈락에 그쳤다. 이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고 얼마 뒤, 현역에서도 물러났다. 그는 노란 [[바이킹]]의 전설, 2000년대 최고의 [[스웨덴]] 축구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가 복귀한 경험이 두 차례 있다.[* [[마이클 조던]]을 좋아하는 것을 여기에서도 알 수 있다.] 첫 번째 은퇴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2002 한일 월드컵]] 마친 직후였는데 이유는 아들이 아빠와 함께 노는 시간이 적다고 해서라고. [[UEFA 유로 2004|유로 2004]]를 앞두고 스웨덴 국민들이 복귀 서명 운동을 하고, 총리가 개인 의사이지만 복귀 희망을 공개적으로 밝혔는데도 요지부동 꿈쩍을 하지 않았다. 결국 예선은 라르손 없이 치러졌으며, 본선 대회 직전 전격 복귀 의사를 밝힌다. 그 사이 큰 아들이 아빠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2006 FIFA 월드컵 독일|2006 독일 월드컵]] 이후 2번째 은퇴를 선언했지만 코칭스태프의 설득 끝에 유로 2008을 앞두고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했다. 여담으로 많은 사람들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즐라탄]]과 라르손이 함께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국대]]에서 활약한 기간이 조금만 더 길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즐라탄이 유망주를 벗어나 대선수로 크고 있을 무렵, 라르손은 이미 노장 선수였기에 즐라탄이 좀더 일찍 태어났거나 라르손이 조금만 더 젊었으면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의 국대 성적도 더 좋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그 둘의 호흡은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았고, 그 즐라탄도 '라르손의 경기력은 내가 함께 해왔던 선수들 중 최고' 라고 인정할 정도. 포스트 플레이로 수비라인을 분쇄하면서 공간을 열어주는 즐라탄과 완벽한 바디밸런스와 순간적인 뒷공간 후려치기로 수비라인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라르손의 조합은 어느 국가의 공격진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재미있는 점은 라르손은 키가 그다지 크지 않음에도 헤더를 매우 잘 하면서 선호하는 선수이고, 즐라탄은 키가 큰데도 발재간을 이용한 다양한 슛을 선호하는 특징이 있는 선수이다. 빅&스몰이기는 한데 평범하지 않은 빅&스몰. UEFA 유로 대회 해트트릭의 영광을 쿨하게 포기했다.[* 직접 넣었다면 역대 7번째의 영예.] [[UEFA 유로 2004|유로 2004]]에서 라르손이 기록한 4경기 3골 중 2골은 사실 복귀 첫 경기인 불가리아전에서 나왔는데 1분 사이에 2골을 몰아 넣은 라르손은 팀이 페널티킥을 얻자 이를 다른 선수에게 양보한다. 경기 후 라르손은 "내가 한 골을 더 넣는 것보다 젊은 선수가 이런 큰 경기에서 골을 넣는 경험을 얻은 것이 중요하다. 스웨덴 국가대표 축구팀이 강해질 것이다."라고 인터뷰했다. 교체로 들어와 페널티킥을 넣은 젋은 선수는 바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즐라탄]]이며 이 골은 즐라탄의 메이저대회 첫 골이다. 아쉽게도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스웨덴]]은 라르손의 대체자를 키워내지 못했고, [[UEFA 유로 2016|유로 2016]]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즐라탄도 클럽에서의 활약에 비해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은 라르손에 미치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